▲ 독서토론 동아리 학생들이 22일 자신이 출간한 책을 들고 기념사진을 찍고있다.
[뉴스노크=김인호 기자] 지난 4일, 울산 남구 남산초등학교 시청각실은 학생들의 열기로 뜨거웠다.
40여 석의 자리가 모자라 바닥에 옹기종기 앉았다.
주인공은 장편 소설 ‘아웃렛’을 쓴 송광용 작가다.
사실 그는 이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18년 차 교사이기도 하다.
교실에서 시작된 작은 변화
변화는 교실 안 작은 수업에서 시작됐다.
6학년 한 학급이 송 교사의 저서로 ‘한 학기 한 권 읽기’ 수업을 진행했다.
우리 선생님이 진짜 작가라는 사실이 학생들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결국 학급 행사로 기획됐던 작가와의 만남은 5~6학년 희망자 전체가 참여하는 큰 행사로 커졌다.
학생들의 질문은 날카롭고도 진지했다. “그렇게 긴 글을 쓰면 힘들진 않나요?”, “소설로 무엇을 말하고 싶었나요?” 송 교사는 아이들 한 명 한 명과 눈을 맞추며 답했다.
“길고양이가 된 주인공처럼, 삶의 울타리 밖으로 밀려나도 끝이 아니라는 걸 알려주고 싶었어요. 그곳에도 새로운 배움과 또 다른 삶이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요” 송 교사는 독자가 된 제자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소설의 이야기가 넓고 깊게 확장되는 느낌을 받았다.
“글에도 근육이 있어요”
동화 작가이자 소설가로 활동 중인 송 교사는 울산 문학상 소설 부문 신인상은 물론, 각종 공모전에서 수상하며 실력을 인정받았다. 지난해에는 동화 ‘거대 토끼 우토와 숲 방위대’를 출간하기도 했다.
오랫동안 작가의 꿈을 품어왔던 송 교사는 첫 아이가 태어난 후 글쓰기에 몰두했다.
육아 중 자신의 정체성을 찾고자 누리소통망(SNS)과 블로그에 글을 쓰기 시작했고, 이것이 출간 제의로 이어지면서 본격적인 작가의 길을 걷게 됐다.
그는 아이들에게‘글 근육’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근육이 생기려면 매일 운동해야 하듯이 많이 쓰고, 고치기를 반복하면 실력이 는다는 지론이다.
학생들에게 조금씩이라도 매일 쓰는 습관을 들여주고자 노력하고 있다.
담임을 맡을 때마다 제자들과 매일 ‘짧은 글쓰기’와 ‘일주일에 두 번 일기 쓰기’를 약속한다.
아침마다 등굣길의 기분이나 먹은 음식의 맛 표현을 적는 습관은 학생들의 마음을 성장시키고 치유하는 건강한 도구가 되고 있다.
또한 송 교사는 아이들에게 직접 책을 읽어주며 문학과 친해지게 돕는다.
학기 초 발표를 망설이는 아이에게는 ‘틀려도 괜찮아’를 읽어주며 용기를 북돋웠다.
‘책을 읽고, 토론하고, 쓰는 활동’이 균형을 이룰 때 아이들의 지적, 정서적 역량이 높아진다고 믿기 때문이다.
정책과 현장이 만난 ‘독서 교육의 본보기’
스승의 열정은 제자들의 빛나는 성과로 이어졌다.
송 교사가 지도한 독서 토론 동아리 학생 5명은 올해 본인의 이름으로 된 책을 출간했다.
특히 6학년 정하윤, 김규리 학생은 울산교육청의 ‘2025년 학생 저자책 공모전’에서 각각 은상과 동상을 받았다.
김규리 학생은 “직접 책을 써보니 이제 어떤 아이디어가 떠올라도 글로 옮길 자신이 생겼다”라며 환하게 웃었다.
이러한 현장의 변화는 울산교육청의 독서 교육 정책인 ‘책 읽는 소리, 학교를 채우다’와 맞닿아 있다.
교육청은 현재 질문 있는 독서 토론, 1학교 1독서 동아리, 십만학생저자 사업 등을 운영하며 학생들의 인문학적 소양을 기르는 데 힘쓰고 있다.
송 교사와 남산초의 사례는 이러한 정책이 현장에서 아이들의 삶을 어떻게 바꾸는지 보여주는 좋은 본보기가 되고 있다.
송 교사는 아이들이 유튜브의 찰나적인 즐거움보다 긴 인내 끝에 얻는 ‘창작의 묵직한 행복’을 알길 원한다.
그는 “아이들이 스스로 즐거움을 찾는 삶의 자세를 갖도록 늘 곁에서 돕겠다”라고 말했다.
선생님의 진심 어린 지도로 남산초 아이들의 꿈은 매일 아침 조금씩 더 두꺼운 책으로 영글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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